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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획자로 만들어준 경험들

기획 도전기

by 기여자 2023. 12. 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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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서비스 회사의 신입 기획자로 취업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시절 비주얼베이직부터 깨작깨작 하다가 소프트웨어학과에 진학하고 지금은 또 기획자로 일한다.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쉴 새 없이 바뀌었지만 하나의 생각에서 나 자신과 맞는 답을 찾아가다가 결국 기획자가 되었고 잘하진 못해도 일이 맞아서 만족하고 있다.
 
회사도 처음 기획팀만 있다가 본격적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모두 채용하고 프로덕트 팀으로 변화하려고 하고 있다. 오래된 회사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고자 과거를 되짚어보려 한다.
 

개발자를 꿈꾸던 시절 밟아온 길


초등학교 시절

bat파일로 shutdown 명령어 넣어 만들던 시절로 돌아간다. 메모장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내 한계를 느끼고 GUI가 있는 프로그램을 짜고 싶었다.
당시 제일 접근하기 좋았던 비주얼 베이직을 시작으로 처음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비주얼 베이직 무작정 따라하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178152

 

비주얼 베이직 6 무작정 따라하기 | 이동숙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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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한 뒤 부모님께 조르며 구매한 후 만들고 싶은 부분 코드를 따라 쳐 이것저것 만들었다. 그중 제일 흥미 있는 것은 지금의 안드로이드 웹뷰와 같은 기능처럼 ie엔진을 손쉽게 가져와 사용할 수 있었고 html css와 이미지를 통해 무한한 디자인을 업데이트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 이미 이 시점에서 설치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지 않으면서 업데이트하는 웹앱에 대한 갈망이 은연중에 있었다.
 
이 때문에 html도 깔짝깔짝 건들고 딴에 프로그램에 무료호스팅 사이트를 연결하여 광고배너라고 만든 적도 있었다.
당시 즐겨하던 게임의 로그인영역을 가져와 게임 실행기라고 만든 적도 있었다.

으악 이거 왜 작동해

열심히 복사 붙여 넣기 하며 여러 코드를 기워 통합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었던 기억이 난다.
 
머리 쓰고 고생한 만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었고 하루종일 무언가 몰입해 본 경험이 나를 개발로 이끌었다.
 

중학교 입학 후

카카오스토리가 출시하여 한국에 타임라인 형태의 sns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에 모르는 사람들과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로 친구추가를 맺고 서로의 서비스 개발 상황, 근황, 헛소리를 볼 수 있었다.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이미 그 시절부터 모르는 사람들과 서비스를 함께 만드려고 단톡을 파고 99% 잡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개발 지식이 부족하여 처음에 기획자로 합류했고 당시 기획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었다.
처음에 아이디어만 막 써내다가 기획서를 달라고 하여 처음 문서를 만들어서 공유했다.

나름 아이템 정책, 화면 내 정보 요소를 배치한 모습이다.

조악한 실력이지만 나름 스케치와 컨셉을 충실히 설명하려 했던걸 보면 나름 진심이었던 것 같다.
첨부하기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이런 과정이 현재의 나를 만든 건 틀림없다.
여하튼 이런 기획서로 게임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 있나... 팀은 서로 바빠 해산하고 지금은 카톡 친구추가가 되었지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진 않는다.
 

고등학교 입학 후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 개발을 위해 AIDE라는 안드로이드에서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편집하는 어플로 학교종소리를 재생하는 어플을 만들었다. 키스토어, 카울리 배너광고 xml과 java를 이때쯤 복붙 하며 공부했었다. 실제 스토어에 안드로이드 앱도 출시했고 본격적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개발자)로 진로 희망을 적도록 만든 계기였다.

apk파일이 있어 실행해봤다. 안드로이드도 뛰어난 하위호환성을 보여준다.

당시 개발자 트리는 치킨집으로 되어있어 비인기 학과였으나 구글의 알파고로 고등학교 졸업 직전은 4차 산업혁명의 중심 학과가 되어있었다.
비인기에서 인기로 넘어가기 직전 막차를 탑승하여 공부도 못한 내가 대학교에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시절

학교 공부로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생활코딩 수업을 들으며 php, mysql, apache로 게시판 소스를 고쳐 에버노트를 따라한 웹 메모장을 만들었다.
https://github.com/kdc1/note

 

GitHub - kdc1/note: Web note

Web note. Contribute to kdc1/note development by creating an account on GitHub.

github.com

현재 소스코드만 남아있지만 이를 언제든 실행하면 다시 노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당시 공용 pc에서 간편 로그인을 위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합쳤고(보안포기), 데이터 무결성을 위해 삭제기능을 제거했다.
당시 노트의 절대 링크로 외부에서 접근 가능하도록 했으니 노션보다 조금 먼저 개인 노트와 외부 게시의 조화를 먼저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 때는 교내에서 라즈베리파이, 아두이노를 이용하여 창문 제어 프로토타입을 만들거나 코딩로봇을 만들었다.

다 강사님이 도와줘서 만들었다.

 

군대가기 직전 서둘러 개발하느라 정신 없었다.

군 입대 후

조리병으로 복무하며 개발자가 아닌 삶을 살았다. 교내에서 팀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삶을 살다가 브레이크가 걸리는 기분으로 칼질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초보자가 되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래도 새 분야에서 초보자로 돌아가는 경험은 무엇이든 이 정도만 감수하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관점을 트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버리고 언제든 새로운 환경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당시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브런치에 올라온 PM에 대한 글을 읽으며 단순 개발자가 아닌 그 너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군 입대 전 실제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금 우리가 이 기능을 만드는 게 맞는가?"에 대해 의문이 많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의 브런치를 보며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supims#info

 

신현묵의 브런치스토리

개발자 | '개발에 있어 형식에 얽매이는 행위야 말로 삽질이다.' - 백세코딩, 개발조직과 문화, 스타트업 주변의 이야기에 대해서 만연체로 끄적거림. 소프트웨어 개발자 주변의 이야기.

brunch.co.kr

https://brunch.co.kr/@skykamja24

 

한상훈의 브런치스토리

플렉스웹 CEO | 시간으로 증명되는 기업을 만들다.

brunch.co.kr

https://brunch.co.kr/@dooook#info

 

최두옥의 브런치스토리

베타랩 컨설턴트 |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연구하고 조직에 도입하는 15년차 스마트워크 디렉터입니다. 국내 중견/대기업의 하이브리드 워크와 업무공간 혁신을 컨설팅하고 해외 리모트워크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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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의 브런치를 보며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일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랑 일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
육체 노동자(조리병)와 지식 노동자(개발자)의 업무적 차이, 일하는 방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다.
일하는 방식을 배우고 가르치고(후임에게 경험에서 비롯한 조리 업무, 검열 대책을 가르친다) (후임이 나에게 조리학적 원리를 가르친다), 이론과 실무지식에 대한 우선순위와 경계에 대해 고민도 할 수 있었다(코딩먼저 컴공이론 먼저, 조리실무 먼저 조리 이론먼저)
한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은 조리나 개발이나 같았다.
 
이런 고민 끝에 조리기능사 공부(자격증 취득은 실패)로 이론을 베이스로 업무 실력을 더 올릴 수 있었고 이런 경험은 복학 후 공부할 때 다른 관점을 만들었다.
실무로 한계를 느껴 이론에 대한 탄탄한 베이스가 중요함을 느꼈고 결국 지식을 늘리고 일에 적용하는 사람만 현재 수준을 개선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복학 후

복학하고 나서는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과 대면수업을 오락가락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창업동아리를 하며 과거의 나와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고민하고 시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테스트하는 행동은 우리 학과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창업동아리와 소프트웨어공학 수업을 들으며 Lean 한 스타트업에서 나오는 애자일 철학과 계획하에 진행하는 전통적인 폭포수 철학 모두를 공감했고 두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몸으로 서로 다른 철학을 익힐 수 있었다.
창업동아리, 기업가 정신, 잦은 팀프로젝트로 나는 개발자를 넘어 기획적인 부분에 손을 대고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협업 방법, 방법론을 좇아 다녔다. 이때부터 학과도 이론위주 공부에 코드를 손에 대지 않아 점점 나는 개발자인가? 아닌가? 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개발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친구가 코딩하고 나는 데이터 구조와 이것이 꼭 필요한가? 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다.
 

기획자를 꿈꾸며 밟아온 길


졸업 전

창업동아리로 상을 10개 가까이 받게 되고 대회에 많이 참여하며 점점 진로에 대한 목표가 바뀌어갔다. 개발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아 1학년 때 메모장 쓰던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코드 에디터를 설치하던 사람에서 코드 에디터로 코드 편집 후 코드 실행 방법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4학년부터는 논문에 집중하다 보니 여러 연구, 논문 읽기, 갈아엎고 새 주제로 다시 하기 등등... 점점 개발자와 멀어져 가면서 나는 개발이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려 10년을 개발한 끝에 적성에 안 맞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인가? 연구실에서 교수님을 도와 잡일도 하고 내가 상을 타러 다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창업 대회를 도와주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아닌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학년부터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하려는 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할까?"

"이 문제를 기존 방법으로 어떻게 해결했어? 굳이 지금 제시하는 방법을 써야 해?"

논문을 쓰다 보니 평소에 논리적으로 안 살던 나도 비논리적인 것에 논리라는 칼을 대기 시작했고 코딩보다 이런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더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기획 온라인 강의도 매주 듣고 기획자로 대회에 나가도 보고 그러다가 논문 주제도 갈아엎고 정신없이 기획자 쪽으로 길을 걸어갔다.

 

졸업 직전 내가 관리에 실패한 프로젝트를 수습하며 기획자는 어떻게 일하는 가 알게 되었고 이를 기틀로 바로 취업준비를 했다. 당시 나온 기업 50여 개에 다 찔러보았으나 2023.2 기준 투자가 끊긴 it업계는 채용이 얼어붙었다....

다행히 면접을 불러주는 5개 기업 중 2개 기업에 합격했고 최종적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이는 음악서비스 회사에 신입 기획자로 입사했다.

 

현재

음악도 잘 모르는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잘 적응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획자로 일 하는 것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사람이 나에게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it 업계에 계속 있는 것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이 방향성과 생각에 새로운 것이 추가되면 직업과 하는 것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현재 일이 만족스럽고 세상과 나 사이에 정답에 근사한 최적해를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사람들이 거의 읽지 않는 글이 될 것이다.

다만, 자신의 일을 바꾸려는 사람 한 사람이 읽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보며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긴 글을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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